새해에는 우리 ‘파멍’ 합시다.
바닷가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누구나 다들 시인이 된 듯 잘 생각나지도 않던 젊은 날에 읽은 시 한 구절도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은 듯한 노래가사가 저절로 흥얼거려지고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의 톤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요즘에 유행하는 것 중 하나가 소위 ‘멍 때리기’이다. 활활 타 오르는 불을 보면서 멍하기도 하고 흐르는 시냇물을 보며 또 산을 보며 멍하기도 한다. 또는 그냥 먼 산이나 하늘을 보며 멍하기도 한다니 참으로 종류가 많기도 하다. 아마도 도시 생활에 찌든 우리들이 일정 부분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온 유행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나는 요즘 유행 한다는 ‘불멍’이나 ‘물멍’보다 바닷가에서 파도를 보며 멍 때리는 ‘파멍’이 더 좋다.
아마도 바닷가에 가본 분들은 누구나 파도가 백사장 가장자리를 오가며 만들어 내는 소리와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고 흡인력이 있는지 실감할 것이다. 참으로 오묘 하리 만큼 파도의 모습은 우리를 사로잡는다. 하얀 포말과 모래의 사각거리는 소리 그리고 갑자기 밀려오는 큰 파도의 모습과 소리는 말 그대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한다. 해안가 파도가 오는 길목에 불현 듯 솟아난 바위나 암초가 있다면 그 파도의 변화는 더 요란?해서 거의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는 느낌이다.
나는 시간만 허락한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양양 앞바다에 있는 약간은 이국적인 모습의 서피 비치(surfy beach)에서 따끈한 커피한잔과 함께 ‘파멍’하고 싶다.
물론 눈과 귀와 코는 물론 오감(五感)을 열어 놓아야 한다. 가끔 작은 보드에 몸을 맡긴 채 파도를 즐기는 청춘을 본다면 그것은 덤이다.
나는 우리 행성을 지구 아니라 수구水球라 부르고 싶다. 지구 표면의 71%가 바다이고 육지와 바다를 합하면 우리 행성은 3천 미터의 바다만 남으니 말이다.
더욱이 다 아는 것처럼 우리 인간을 포함한 수구의 생명체는 바다에서 나왔다. 우리 인간도 당연히 수구생명체의 일원이니 바다가 원초적인 고향이다.
아마도 우리가 바다에 가면 편안함과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갓난 아기가 엄마에게 안겨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나 정서와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 서양에서 바다가 여성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굳이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바다에 가면 편하고 왠지 그냥 좋다. 우리 생명의 모태이기에 그렇다.
언제나 어머니가 그런 것처럼 언제나 바다는 그 자리에 그냥 있고 또 우리를 반겨준다. 바다는 우리의 원초적인 고향이고 뿌리이다.
갑자기 동해 바다로 파멍하러 떠나고 싶다, 그리고 흥얼거리고 싶다. 노래 한 자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