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와 보도 해밀도
19세기 당시 세계의 패권 국가이던 영국은 대륙국가인 러시아의 팽창을 전통적으로 견제하여 러시아의 소위 남진정책을 유럽과 흑해 그리고 극동 지역 등 다방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저지하여 왔다.
극동에서 러시아를 막기 위해 영국이 취한 전략이자 방안의 하나로 한반도에 벌어진 것이 바로 한반도 남단의 여수 남쪽에 있는 섬인 거문도 점령이다.
1882년의 임오군란과 1884년의 갑신정변이라는 회오리를 겪으며 청나라의 입김 속에 들어 있던 고종임금 22년인 1885년 영국은 러시아의 극동에서의 남진정책을 견제한다는 명분을 삼아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1887년까지 약 2년간 항구를 만들어 해밀턴 항(Port Hamilton)이라 부르고 4-5백 명에 달하는 해군병력을 주둔시켰다. 당시의 영국의 해군 사령관 이름인 해밀턴을 따서 그리 불렀던 것이다.
그 당시 영국은 조선의 영토인 거문도를 점령하면서도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으로 생각하여 조선에는 알려주지도 않고 오히려 청나라와 협상을 했다고 하는데 조선말기 우리나라가 처한 힘없는 약소국의 아픔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의 하나이다. 결국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지 두 달이 넘은 후에야 청나라가 이 사실을 조선에 알려주게 되는데 당시 조선은 자신의 땅이 외국에 불법 점거된 것도 외국을 통해 통보받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영국은 이 거문도를 제법 오래 점령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영국은 1887년에 거문도에서 상해까지 전신을 보낼 수 있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시설인 해저 전신 케이블 까지 부설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거문도에는 당시 거문도에서 숨진 영국 수병의 묘지와 함께 영국이 부설했던 케이블 흔적이 남아서 당시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당시 영국인들이 거문도항을 부르던 영어 이름인 ‘포트 해밀턴’을 들리는 대로 따라 부르던 일부 섬 주민들이 그 이후에도 거문도를 ‘보도 해밀도’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섬을 점령당하고 뜻도 알지 못하는 해괴한 이름으로 섬을 부른 섬 주민들에게 어찌 무어라 탓을 하겠는가? 그것을 막지 못한 당시 지배층과 위정자들을 탓해야지, 참으로 슬픈 이름이고 슬픈 거문도이다.
보도 해밀도가 아닌 우리의 섬, 아름다운 거문도는 지금도 여수 남쪽 바다에서 빗나고 있다.
그런데 영국군의 점령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거문도는 우리나라 근대 스포츠인 테니스의 발상지가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이 만들어진 곳이 바로 거문도인 것이다. 거문도는 우리나라 테니스의 발상지이자 당연히 근대 스포츠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곳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영국 군인들은 거문도를 점령한 후에 테니스 코트를 만들어 놓고 테니스를 즐기기도 하고 당시 거문도 일부 주민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고 하는데, 거문도 해안에 위치한 우리나라 1호 테니스 코트가 있었던 곳에는 이를 기념하여 지금도 그 자리에 테니스 코트가 만들어져서 ‘해밀턴 코트’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테니스 애호가들은 우리나라 1호 코트인 이곳에서 경기하는 것을 나름의 의미로 생각하여 매우 붐비는 테니스 코트라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좋은 역사이든 가슴 아픈 역사이든 우리가 기억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으면 될 뿐이다. 역사란 억지로 지우거나 덧칠 한다고 지워지거나 본질이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거문도는 거문도이고 그 섬에는 벌써 봄이 와 있다.
-전 해양수산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