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에 생각하는 복지부동과 넙치관료
우리나라의 복지부동 관료
공직자로 현직에 있을 당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바로 ‘복지부동’ 이란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정권 교체기나 어떤 민감한 사안이 부각되면 공직자들이 당연히 할 일을 하지 않고 정치권이나 외부 눈치만 본다며 소극적이며 피동적이라고 공직자를 비판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공직자들의 기본자세가 우선 문제일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직자를 정치권의 하위체계로 생각하는 인식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정치권력이 5년마다 변하는 단임제 대통령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일정한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직자들의 기본 속성인 법과 제시된 정책에 따른 집행적 업무성격과 당연히 가져야 할 정치적 중립성과 균형적인 시각을 침해하는 정도에 까지 이르면 공직자들에게는 물론이고 국가와 국민들에게도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일을 하는 공직자를 복지부동한다고 타박하기도 하고 소극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로 자기의 민원을 들어 주거나 정치적 견해를 옹호해주면 적극 행정을 하는 공직자라 평가하기도 한다. 여하튼 우리의 복지부동 관료는 땅 바닥에 바짝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의 넙치관료
일본 역시 아주 같은 의미의 말이 있다. 그런데 육지의 나라인 우리와는 다르게 바다의 나라인 일본은 그들답게 이러한 관료를 일컬어 ‘넙치관료’ 라고 표현한다. 넙치관료라니! 일본 관료들은 광어회를 너무 좋아해서 넙치관료라 불린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광어라고 불기기도 하는 물고기인 넙치는 바다 바닥에 엎드려 지내는데 눈이 두 개인데도 왼 쪽 한 방향에만 붙어 있어 한 방향만 보게 된다. 넙치가 태어 날 때는 보통의 물고기와 같이 양쪽에 눈이 있지만 커가면서 눈이 왼 쪽으로 붙어 결국에는 두 눈이 한 면에 붙어 있게 된다. 구조적으로 그렇기에 넙치는 바다 바닥에 배를 깔고 한 방향만을 보고 있는데, 넙치관료란 바닥에 바싹 엎드려 한 쪽 눈만 뜬 채 꼼짝 않고 있는 것을 빗댄 말이다.
그 모습을 상상해 보면 소극적이고 복지부동이다 못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우리나 일본이나 둘 다 좋은 의미의 말은 아니지만 일본의 용어를 보면 바다와 관련된 용어나 모습들이 일본인들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일본인에게 바다는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다.
그런데 어떤 대상을 보게 되면 실체와 더불어 용어나 호칭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호칭에는 그 직업에 대한 성격과 존경심이 같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에 간호사를 간호원, 가사도우미를 파출부나 가정부, 거리 미화원을 청소부, 보험설계사를 보험외판원 등으로 호칭하였다. 그러나 호칭을 현재처럼 바꾸고 나니 한결 그 직업에 대한 전문성과 자부심 그리고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이라는 느낌이 피부에 와 닿게 된다.
또한 복지부동 관료는 이를 매우 강하게 꾸짖는 공격적인 느낌이 드는 반면 넙치관료는 비판을 하면서도 애정이 바닥에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더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도 있다고 보여 진다. 이 기회에 우리도 복지부동 관료대신 좀 더 애정이 깃든 용어로 바꾸면 어떨까 한다. 그것도 바다에서 나온 용어로...
내일 모레면 3.1절이다. 암울한 시기에 큰 용기를 가지고 결연히 일어났던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가 막연히 일본에 적개심을 가지거나 이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일본을 이기는 길은 그들보다 더 잘 살고 더 잘 하면 되는 것이다. 섬뜩한 죽창가를 부르고 막연한 극일과 반일을 외쳐서는 가능하지 않다.
바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복지부동과 넙치관료에서 보듯이 일본이 갖고 있는 바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우리와는 많은 면에서 비교된다. 현재 우리가 바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나 시각을 되돌아보고 일본보다 우리가 바다에 대해 더 많은 할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소중히 가꾸어 나간다면 우리가 그들을 이기는 것이다.
모든 분야가 그러지 않을까 한다. 3.1절에 그것을 되새겨 보고 다짐해 보았으면 좋겠다. 바다가 우리의 미래이니까.
복지부동이나 넙치가 아닌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공직자가 우리 사회에 넘쳐나기를 바란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공직자들을 응원한다.
-해양수산부 전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