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과 왜구의 5000km
우리에게 바이킹(Viking)은 매우 익숙하다. 놀이공원에 가면 바이킹이라고 스릴 넘치는 그네처럼 생긴 놀이기구가 있어서 일수도 있고 또 바이킹들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기에 그럴 것이다.
물론 그 놀이기구가 바이킹이 타고 다니던 배와 비슷하게 만들어 졌기에 그러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바이킹은 왜구와 같은 해적이나 불한당 같은 이미지 보다도 열혈 탐험가나 모험적인 뱃사람 정도로 보는 것은 아닌지 한다.
그런데 유럽인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킹은 당시 유럽에서는 거의 아수라였다. 동양의 왜구와 같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덴마크의 바이킹들이 당시 서양의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왕조를 멸망시키는 등 유럽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맹활약'을 하였다. 자세한 바이킹 이야기 별도의 기회를 갖기로 한다.
그런데 동양으로 눈을 돌려 보면 왜구(倭寇)라는 집단이 있다. 우리 한반도에도 참으로 아주 못된 짓들을 많이 하여 큰 피해를 준 해적이자 반민 반군의 군사집단으로 이미 삼국시대에서부터 우리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집단이다.
이 왜구들이 저지른 폐해에 대하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먼저 이 말을 하는 것은 일본과 관련한 사안에 대하여는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있기에 미리 전제하고자 한다. 여하튼 이 왜구들은 일본 대마도 등을 근거지로 하여 한반도는 물론이고 대만과 중국의 남쪽인 상해와 해남도, 지금의 필리핀에 까지 이르러 약탈과 온 갓 못된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의 활동영역을 보면 당시 동북아 바다의 전체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까지 그들의 무대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왜구에 대해 조금 시각을 바꾸어 ‘바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 한반도를 되돌아 보게 된다.
당시 왜구가 지금으로 보아도 엄청난 항해거리이자 면적인 남중국해까지 항해를 하고 다시 일본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상당한 조선기술과 뛰어난 항해술과 고도로 숙련된 항해인력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최신 기술로 건조된 배와 항해장비로도 그리 쉬운 항해가 아닌데 당시의 목선에다 노와 돛으로만 움직이는 배를 가지고 이러한 바다를 향해하였다는 것은 그냥 쉽게 넘어갈 수준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가 조선시대에 한반도 연근해를 벗어나지 못하여 해안 지형을 눈으로 보면서 항해하는 연안(沿岸) 항해 또는 목측(目測) 항해를 한 것을 생각하면 왜구들의 그 기술 만큼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 생각된다.
당시 조선은 이러한 조선기술과 항해술과 전문 항해인력 어느 것 하나 갖지 못하였다. 아니 오히려 아예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이라 하여 바다를 외면하였다.
이것이 지난 세기 초에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결정 지는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유구한 바다전통이 있었다. 신라 시대의 해양수산부 성격인 선부(船府)와 장보고의 활동 그리고 백제의 일본과의 교류 그리고 고려의 왕건과 당항진의 바다전통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조선시대의 바다다.
유럽과 북미 사이에 있는 지구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는 덴마크 영토로 바이킹들이 발견했는데 덴마크 본토에서 50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참고로 섬은 그린란드를 기준하여 그린란드 보다 크면 대륙으로 본다. 그러기에 호주는 섬이 아니라 대륙으로 보고 그린란드가 가장 큰 섬이 된다. 일본 열도는 북에서 남으로 이어진 영토의 길이도 약 5000km 정도로 끊어질 듯 끊어질듯 하면서도 작은 섬들로 이어져 있다.
우리 한반도가 남북한 합쳐서 최북단으로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최남단인 제주도 마라도까지 약 1450km 정도인 것을 비교하면 엄청난 영역임을 알 수 있다.
일본 열도의 기후는 한대에서 열대에까지 이어져 있는데 이 일본의 현재의 영토가 바로 왜구의 활동영역과 아주 일치한다.
바이킹과 왜구를 보면 이들이 부럽지는 않으나 조선시대에 망각하여 보이지 않던 우리의 바다는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시 바다를 돌아보는 하루다.
-전 해양수산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