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완성자이자 유럽의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 빅토리아 여왕은 우선 64년이라는 엄청난 재위 기간(1837-1901)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 작고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두 번째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바다와 섬을 사랑한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별명에 걸맞게 남편인 알버트(Albert) 공이 마흔 두살의 젊은 나이로 먼저 세상을 뜨자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영국 남부 포츠머스 남쪽에 위치한 와이트 섬(Isle of Wight 영국인들은 그 섬이라는 의미로 ‘The Island’라고 부르기도 한다)의 오스본(Osborn) 하우스에 은둔하며 정사를 보지 않았고 결국 이 섬에서 숨을 거둔다. 빅토리아 시절은 영국이 역사상 가장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로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라는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이 시대야 말로 영국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최고의 시기였다. 지금 런던의 버킹엄궁 인근이나 첼시 지역 등에 남아있는 고풍스런 멋진 석조건물들은 대부분이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런던의 모습이 이 당시의 모습인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아편전쟁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홍콩을 할양받았으며 인도를 동인도회사를 통한
영국은 여왕이 다스릴 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일정부분 일리가 있고 또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여왕이나 빅토리아 여왕시대가 그렇다. 그런데 유렵 열강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여왕이 다스리던 시절 바다로 진출하여 국가 번영의 토대를 만들었거나 계기가 된 사례들이 많다. 참으로 우연인지 아니면 바다가 여성이듯 여왕들이 바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역사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영국과 결혼한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여왕(1558-1603년 재위)은 45년간이나 재위하면서 명실상부하게 영국을 해양국가로 만드는 기반을 놓은 여왕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그 유명한 영국의 군주였던 헨리 8세와 비운의 왕비 앤 볼린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자손으로 앤 볼린이 죽으면서 순탄치 못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우역곡절 끝에 결국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는 1492년 신대륙 발견이후 당시 세계 최강의 함대를 보유하여 대서양을 주름 잡던 스페인을 견제하기 위하여 비상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바로 당시 신대륙 카리브해와 대서양에서 스페인 상선을 공격하여 물건을 약탈하던 악명 높은 영국인 해적 선장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선장님 선장님, 우리 선장님! 캡틴의 나라, 영국의 선장님들 영국에서 존경의 대상은 많다. 영국 왕실의 왕이나 왕족들, 그리고 과학자나 연예인들이나 스포츠계의 스타들이 그들이다, 존경의 대상으로 왕실의 경우는 군주가 없는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나 다른 대상들은 우리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우리와 완전히 다른 존경의 대상이 있다. 바로 배의 ‘선장(Captain)’에 대한 영국인들의 존경심과 소위 한수 접어주는 태도이다. 우리나라에서야 이전부터 ‘오뉴월에 물가에 가지마라’ 라는 속담이나 조선시대에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정책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배를 탄다는 것은 고생하는 자리이고 직업으로서 선호하는 대상이 아닌 것이 현실이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우리 주위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배를 타라 간다고 하면 환영보다는 말리는 편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선박에 승선하여 항해경험을 쌓고 선장까지 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선망이 되는 직업이었다. 소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되는 직업이 아닌 것이고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나 인식이 최근에는 많이 달라지고 쇠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아직도 선장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 영국 왕실에 군 미필은 없다 영국은 다 알다시피 바다를 통해 대영제국을 건설하여 전 세계 면적과 인구의 1/4을 지배하는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영국인들의 바다사랑은 참으로 대단한데 그중에서도 영국왕실의 바다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영국 왕실의 남자들 즉 왕자들은 대대로 군에 복무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선적으로 해군에 복무하는 것이 왕실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얼마 전에 영면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조부이자 윈저(Windsor) 왕가를 연 조지 5세와 부친 조지 6세는 모두 해군에 장교로 복무하여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 2세도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는데 여왕은 2차 대전중 영국의 국방군에 자원 입대하여 보급 장교로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2021년 99세에 세상을 떠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 공도 해군함정에서 갑판사관 장교로 복무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기간중 해군대위로 참전한 바 있다. 여왕의 아들로 뒤를 이은 찰스3세 왕도 1970년대 해군에 입대하여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한 바 있다. 왕실은 아니지만 영국을 2차 세계대전의 패배에서 구한 처칠 수상도 1차 세계대전
HD한국조선해양이 조선·해양 분야 미래기술 선점을 위해 유럽 현지에 R&D 투자 확대에 나선다. HD한국조선해양은 독일 HD유럽연구센터를 중심으로 향후 5년간 1500만 유로(약 22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28일 밝혔다. 우선 HD한국조선해양은 연구개발의 일환으로 영국 에든버러 대학과 함께 선박용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OCCS) 고도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OCCS는 선박 운항 과정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 내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선박의 탄소배출량을 절감하는 기술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오는 2024년까지 함께 개발한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PSA-SPUR)을 선박에 적용할 수 있도록 탄소 흡착 공정 최적화와 실증을 추진할 계획이다. 앞서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4월 독일 현지에 HD유럽연구센터의 전신인 글로벌R&D센터를 설립, 독일 아헨공과대학교와 차세대 선박 추진 관련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HD한국조선해양은 수소 관련 연구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노르웨이 과학산업기술연구재단(SINTEF) 컨소시엄 등과 함께 대형 액화수소운반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또 수소탱크용 신소재, 해수전지, 연료전지 등 미래기술 분야에 대해서도 유럽 연
삼성중공업이 1분기 매출 1조6051억 원, 영업이익 196억 원의 잠정 경영실적을 27일 공시했다. 이로써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7년 3분기 이후 무려 22개 분기만에 적자를 탈출했다. 삼성중공업의 지난해 4분기는 적자 3358억 원을 기록했으며, 전 분기 대비로는 3554억 원이 개선됐다. 영업이익 개선과 관련해 삼성중공업은 지난 2021년부터 이어진 견조한 수주 실적으로 연 매출 규모가 증가하는데 따른 고정비 감소 효과와 선가 회복, 원자재 가격 인상 둔화 등 이익률 개선 효과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1분기 흑자 실현은 삼성중공업이 올해 적정 규모의 매출액 회복과 수익성 개선을 통해 안정적인 흑자 구조로 전환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하반기로 갈수록 이익이 늘면서 연초 공시한 연간 영업이익 2000억 원 달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발명왕 에디슨과 바다 지금으로부터 175년 전인 1847년 2월 11일 불후의 발명왕 에디슨이 태어난다. 우리에게 익숙한 명언도 많지만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는 명언은 우리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학생들을 두신 어머님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발명왕 에디슨이 남긴 명언중의 명언이 아닐까 한다. 우리도 이 명언에서 용기를 얻어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을 통한 가능성을 보고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어려서부터 엉뚱해서 정규 학교를 3개월 밖에 다니지 못하였으니 요즘 말로 튀는 학생중 하나였고 학교생활 적응불량 학생이었던 셈이다. 우리 학교의 환경과 사회 여건이었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반문하게 된다. 그러나 에디슨은 자신의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으로 축음기, 전화기, 백열전구, 영사기 등 무려 1,093개의 발명특허를 가진 불후의 발명왕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의 아이디어가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설립된 회사가 지금도 미국의 유수한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인 ‘GE’이다. 우리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19세기 중반 우리는 당파싸움에 빠져서
진정한 바다의 풍운아, 바이킹 유럽에 바이킹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유럽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지금과는 엄청나게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역사에 가정이란 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바이킹들이 남긴 영향은 엄청나기에 생각해 볼만하다. 이러한 바이킹들에 대한 평가도 매우 다양하다. 바이킹의 원조들인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기 나라 바이킹들은 좋은 바이킹이고 다른 나라 바이킹들이 못된 짓을 한 나쁜 바이킹들이라고 농담 삼아 하기도 한다. 바이킹이라는 말은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에서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협곡이나 계곡을 의미하는 ‘비크 Vik’에 사는 사람들에 유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래된 대표적인 도시가 바이킹들이 건설한 나라인 아이슬랜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 이다. 전 세계 수도 중에서 가장 높은 위도에 위치한 수도이다. 그러고 보면 북극권에 있는 많은 도시나 마을이 00비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우연히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바이킹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콜럼부스 보다 500여년 앞선 1,000년경에 이미 발견하고 도착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 바이킹들은 당시에 유럽 북해에 위치한 페로(Faroe
이경규(왼쪽) 해수부 수산정책실장과 강준석 부산항만공사 사장. 해수부·부산항만공사 제공 인천항만공사(IPA) 제7대 사장에 이경규 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항만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부산항만공사(BPA) 강준석 사장에 이어 IPA도 수산전문가가 사령탑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마감된 IPA 사장 공모에 2명이 지원했으며, 이 중 한 명이 이경규 실장이다. 이번 사장 공모에서 지원자가 2명뿐인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2020년 제6대 사장 임명 당시에는 8명이 지원했었다. 업계 관계자는 "해수부가 이미 이 실장을 사장에 내정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라며 "여기다 IPA가 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 지정 기준 변경에 따라 '기타공공기관'으로 변경되면서 해수부의 입김이 더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실장은 해수부에서 손꼽히는 수산전문가로, 수산정책과장 수산정책관 등을 거쳤다. 그런 만큼 해운항만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해수부 산하 지방해양수산청장도 한번 맡지 않았다. 이 실장이 IPA 사장이 되면 국내 양대 항만인 부산항과 인천항 운영을 모두 수산전문가들이 맡게 된다
바이킹과 왜구의 5000km 우리에게 바이킹(Viking)은 매우 익숙하다. 놀이공원에 가면 바이킹이라고 스릴 넘치는 그네처럼 생긴 놀이기구가 있어서 일수도 있고 또 바이킹들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기에 그럴 것이다. 물론 그 놀이기구가 바이킹이 타고 다니던 배와 비슷하게 만들어 졌기에 그러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바이킹은 왜구와 같은 해적이나 불한당 같은 이미지 보다도 열혈 탐험가나 모험적인 뱃사람 정도로 보는 것은 아닌지 한다. 그런데 유럽인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킹은 당시 유럽에서는 거의 아수라였다. 동양의 왜구와 같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덴마크의 바이킹들이 당시 서양의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왕조를 멸망시키는 등 유럽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맹활약'을 하였다. 자세한 바이킹 이야기 별도의 기회를 갖기로 한다. 그런데 동양으로 눈을 돌려 보면 왜구(倭寇)라는 집단이 있다. 우리 한반도에도 참으로 아주 못된 짓들을 많이 하여 큰 피해를 준 해적이자 반민 반군의 군사집단으로 이미 삼국시대에서부터 우리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집단이다. 이 왜구들이 저지른 폐해에 대하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